May 1, 2026
coknow
https://shredder.glaspress.com
– “파쇄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귀향.을 파쇄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를 띄우고, 관객에게 예, 아니오의 선택지를 제시한다.
– 관객이 아니오를 선택했을 경우 ‘결말은 정해져 있지만,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띄우며 퍼포먼스를 중단한다.
– 관객이 예를 선택했을 경우 여섯 글자씩 .귀향.의 두 챕터를 음절화하여 관객에게 제시하는 페이지로 넘어간다.
– 두 챕터를 구성하고 있는 42,603음절, 31,209음절을 모두 관객에게 제시했다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 “당신은 이미 파쇄하였습니다”라는 문구를 띄운다. 그리고 이제까지 퍼포먼스가 실행된 횟수를 보여준다.
– 퍼포먼스가 300회 진행되면 퍼포먼스를 중단한다.
“.파쇄.는 자조적인 책이다. .귀향.의 재고를 바라보며 파쇄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수행한 글쓰기가 기대했던 만큼 나의 정신을 자유롭게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귀향.의 원동력 자체가 나 자신을 지우는 일과 관련 있었으므로, 실제로 책을 제거하는 데서 오는 희열이 있으리라. 이 역시 자유라면, 밤톨만할지라도 여전히 자유가 아니겠는가?” – 작가의 말
퍼포먼스에는 스코어라는 개념이 있다. 퍼포먼스의 이정표로 보면 이해가 편할 것. ‘관객을 향해 걷는다’, ‘허공을 바라본다.’, ‘팔을 뻗는다.’ ‘책을 낭독한다.’ 등의 퍼포머의 행위를 지시하기도 하고, ‘음악이 시작할 때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관객이 뒷걸음질을 칠 때 인사하며 퍼포먼스를 중단한다.’ 하는 방식으로 퍼포먼스의 전반적인 과정을 구성하기도 한다. 코딩도 이와 비슷하다. 웹페이지의 지시문이다. 버튼을 누르면 특정 페이지를 보여주고, 영상이나 음악이 재생되거나, 색이 바뀌는 식으로. 신승민의 신작 .파쇄.(shredder.glaspress.com)은 그의 책 ‘.귀향.’의 파쇄를 위해 만들어진 네 장의 책이자, 웹 애플리케이션이자, 퍼포먼스다.
‘.파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마지막 페이지다. ‘당신은 이미 파쇄하였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그 아래 이제까지 파쇄된 책의 수가 나오며, 이 수가 300에 도달하면 웹 페이지는 사라진다. 다시 접속하더라도 .파쇄.를 볼 수 없고 이미 파쇄되었다는 문구뿐이다. 이 구조를 통해 웹 기반의 페이지가 가지는 ‘언제든지 재실행이 가능함’을 제한하면서 디지털 퍼포먼스가 가질 수 있는 한계점을 극복한다.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문학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 글쓰기가 저에게 미치는 영향과 거기서 얻고자 한 효과를 계속 감지하면서 나아갔다는 점에서 과정 중심이었던 것 같아요.” – 신승민
신승민은 .귀향.이 수행적 글쓰기를 실천한 것이라 말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영향을 받는 자신을 경계하며, .귀향.이라는 글쓰기를 통해 ‘자아 이미지(self-image)’ 해체를 시도했다. 하지만 .귀향. 자체로는 불완전하다고 판단했고, 스스로를 지우기 위해 만든 책 .귀향.을 파기하는 프로젝트 .파쇄.에 다다른다. 혹자는 그냥 웹페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파쇄.는 파쇄라는 ‘목적’만을 위해 설계된 책이자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목적을 달성하면 그 페이지는 사라지기 때문.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건 흔적이 남지 않을 책의 기록이기도, 퍼포먼스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책의 결말을 생각한다. 정보, 서사 혹은 감정이나 사상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는 책은 그 사명을 달성하면 질료 자체로 돌아간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책은 그를 기억하기 위한 오브제로, 학창 시절 풀었던 문제집은 뜨거운 음식을 담은 냄비의 받침대로, 비상시에는 요긴한 메모장으로도 쓰이며 때때로 코를 풀기 위한 휴지를 대신해 제 몸을 희생한다. 그들은 헌책방에서 새로운 주인을 찾기도 하지만, 결국 종이로 돌아가 공장을 통해 또 다른 책으로 탈바꿈한다. 목적을 잃은 책을 파쇄하면 그 책에 기록되어 있던 것들이 사라지는 걸까? 그 책을 생각하는 독자와 집필자의 수많은 되새김과 교열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최소한 독자들과 집필자의 생이 다하는 날 까지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럼 .파쇄.가 의미가 없다. 신승민은 자아 이미지를 없앤, 자아가 비워진 상태는 불가능할 것이라 말한다. 동감한다.
.파쇄.의 꼴을 살펴본다. 코딩이라는 스코어로 철저하게 계산된 퍼포먼스로도 읽히는데, 관객의 자율적 행위를 제한하여 설계된 의도에 봉사하도록 유도하는 무대와 유사한 구조다. ‘자아 이미지’를 해체하려는 시도라 말하지만, 스스로를 해체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정교한 자아 증식으로도 보인다. 그래서 신승민의 .귀향.과 .파쇄.는 매력적이다. 수행성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의 작업물은 창작자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한다. 글을 쓰는 우리들에게. 작업을 하는 우리들에게. 옷을 다루는 우리들에게 남은 작업과 재료는 모종의 후회로 남기도, 그리고 ‘이런 작업물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편견으로 납작하게 만든다.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책이,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작업이, 아직 결합되지 못한 원단과 주목을 받지 못한 옷이 작업실 한 켠에 쌓여 더 좋은 글을 쓰고, 더 첨예한 작업을 하고, 더 완성도 있는 옷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포감을 심는다. 목적을 잃어버린 작업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을 보면 좋은 작업만을 할 수 없는—실수를 하고 이를 디딤돌 삼아 나아가는—스스로를 긍정하는 듯한 인상까지 받는다. 하지만 모든 작업이 물질적인 기능만 남게 되는 운명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애초의 오브제로서의 기능을 염두하고 만들어진 작업은 전시로 인한 이미지 소진에 기능을 잃지 않지만, 전시 이후의 작품 보관비 부담 등으로 존폐의 위기에 놓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작업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 전시 《HOW TO BETTER YOURSELVES》와 이주요의 《전시 이후 작품들은 어디로 가는가?》 가 좋은 예시다.
전시 《HOW TO BETTER YOURSELVES》는 오어진이 기획하고, 임다울, 배민진, coknow가 참여한 전시로 작업실 공사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재료와 작업을 드러낸 전시다. 코로나로 인해 전시 공간을 섭외하기도 어렵거니와, 없어진 작업실을 따라 작가들에게 남겨진 재료와 작업으로 5평 남짓한 작은 거주지에서 전시를 열었다. 전시, 보관, 작업에 대해 작가들이 처한 상황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전시였다. ‘여의치 않음’을 극복하고자 했던 몸부림이자 주기적인 전시가 미술인으로서의 자격요건인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만든 동아줄이었다.
전시 《HOW TO BETTER YOURSELVES》가 작가가 전시 전에 처한 상황을 이야기한다면, 이주요의 《전시 이후 작품들은 어디로 가는가?》 전시 이후를 말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이주요의 전시는 수장고를 연상시킨다. 미술 작품은 쓸모가 없어질 운명이다. 컬렉터들에게 판매가 되지 않는 한, 몇 번의 전시 (많아야 3~4번)를 거치면 더 이상 목적을 잃은 작업들 혹은 재료는 책과 같이 질료로서의 기능밖에 남지 않는다. 이런 운명은 동시에 작업자에게 나중에 버려야 한다는 강박으로도 작용해 작업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주요는 그런 압박감 속에서 스스로의 작업이 점점 해체하기 쉬운 연약한 형태로 변하는 걸 느끼고, 해당 전시를 진행했다.
이 두 전시는 수행성에 주목했다는 지점에서 신승민의 .귀향.과 .파쇄.와 닮았다. 《HOW TO BETTER YOURSELVES》는 현실 기반의 수행을, 《전시 이후 작품들은 어디로 가는가?》는 제도 비판적 수행을 한다. 전시 자체가 함의하는—문제를 제기하는—지점도 물론 있지만, 작가 스스로 얻는 ‘전시’라는 행위를 수행함으로써 얻는 모종의 보상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보상’에 집중한 작업이 신승민의 작업으로 외부 조건으로 유도된 것이 아닌 ‘자의식적 파기 의례’로 볼 수 있다.
남겨진 책과 작업에 이어 옷은 어떨까. 고개를 잠깐이라도 돌리면 경향이 바뀌는 패션계에서 남은 원단과 재고는 홀대당하는 동시에 창작자의 물리적 공간과 경제적 조건을 압박한다. 주인이 없는 옷은 헌옷수거함을 통해 새 주인을 찾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통계에 따르면 의류폐기물은 약 11만 938톤이다. 트랜드를 벗어난 옷은 버려진다. 유행이 아닌 옷을 다루는 빈티지샵 혹은 몇몇 브랜드가 소량 생산, 리사이클과 리페어 같은 실천으로 양보다 질에 집중하며 안티패션—주류 패션 시스템의 대량 생산의 뒤따르는 일회성과 속도 중심 소비를 거부하고 물질의 잉여성, 의미의 불완성, 생산의 윤리성을 긍정하는 체제 전복적 실천—을 외치지만, 작년 무신사의 영업이익이 1,000억에 달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메이저 물결은 굳건하다. 이번 생애에 실현될 가능성이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래도 그들은 다양성을 이야기한다. 신승민도 ‘가브’라는 이름으로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곧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옷과 책을 다루며 나아갈 것이다.
신승민의 .귀향.은 이렇게 보면 책이라기보다는 글쓰기라는 퍼포먼스의 기록물에 가깝다. 그리고 그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파쇄.를 진행했다. 그는 관객이 어떤 것을 느끼길 바랄까. 발전이나 자아 계몽 같은 거창한 말까진 아니어도 여기 아름다움을 느낀 동료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