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누르면 닫힙니다.
보부아르, 아이리스 머독, 시몬 베유. ‘여성 철학자 3명을 통해 윤리를 이야기한다’는 기획은 되게 강한 선택이고 정치적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시대와 지역의 여성 철학자들 중에서 이들과 함께 말하기로 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여로]

December 25, 2025

이미지를 누르면 펼쳐집니다.

25년 12월 16일, 『선의 캐리커처』를 함께 읽고. ⓒ EVM


하영

실망스러운 대답을 드리자면 전후의 철학사적 흐름을 제가 잘 몰라요.1 최대한 아는 분야 내에서 고민을 풀어낼 작가들과 함께했고, 그들 사이의 비판과 영향 관계를 쫓으며 지금의 모양이 됐어요. 그런데 책에는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이 전면에 나오지는 않거든요. 사실 이 사람들이 남성이었어도 상관이 없게 쓰였고, 보부아르는 여성주의자였지만 베유나 머독은 그런 문제의식이 추출해내지 않는다면 딱히 그들의 철학 내에 드러나 있지는 않아요.

다만 ‘철학사에 여성 철학자를 편입시키고 싶다’는 정치적 마인드가 있었고, 철학과 생활을 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기 제 동료들도 있는데, 뭐라고 해야 될까, 남초 집단입니다. 고개를 끄덕여 주셔서 감사한데, 그게 그 자체로 나쁜 건 아니지만 철학을 공부하면서 여자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것에 무의식적으로 축적된, 뭐라고 할까요? 솔직히 말하면 자부심도 있고, 피로함도 있고, 그것들이 여성 한정적 작품으로 태어난 게 아닐까, 철학서의 이름들이 남성이라는 게 너무 자명한 가운데, 반드시 여성주의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게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철학사 내에 자리매김하는 모습들을 [EVM 발행인] 수지와 함께 만들고 싶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희수

나 자신이 되는 선택, 외부에서 다가오는 시선, 둘의 윤리적 갈등이 ‘적마리아의 수태고지’라는 가상의 상황으로 그려지는데 기독교에서 선악의 구분 자체가 에덴 동산에서 처음 일어나잖아요. 그때도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준 규범이 ‘생육하고 번성하라’, ‘선악과를 먹지 마라’였는데 사실 대립하는 규범이고 하나가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하나를 어겨야만 하는데 처음 규범을 어긴 사람, 하지만 규범을 어기는 것이 오히려 규범을 지키는 일이 되게 한 사람은 여성이었고, 마리아도 본인의 통제 바깥에서 오는 힘에 의해 규범을 당했는데, 어쨌든 그 자신이 그것을 또 지켜냈잖아요. 그런 모순되는 상황 자체가 여성적이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하영

규범을 위반함으로써 지켜낸다든지, 당함으로써 가한다든지 이런 것들에 여성적이라고 읽힐 단서가 있다면, ‘의지가 있고 실현한다’는 단선적 행위를 모두에게 모범적인 행위가 아니라 남성적 모델이라 본다면, 그 모델을 따르지 않는, 그럼에도 같거나 다른 [윤리적] 목표를 달성하는 모델들을 여성적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렇게 보면 보부아르는 엄청 단선적이고, 테토죠. ‘너의 의지를 가해서 세계를 바꾸도록 행위하라’가 되니까 베유와 머독은 ‘너의 의지를 삭감하고 세상이 어떤지 보라’인데 대부분의 윤리학에서는 [단선적] 행위가 윤리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근데 요새 하는 생각은 잘 하고, 좋은 의지를 갖는 것만 아니라 잘 당하는 거, 잘 견디는 거, 잘 고통받는 거 또한 윤리적 삶의 일부인 것 같거든요. 어떤 예를 들 수 있을까요? 행위자(agent)가 있고 피행위자(patient)가 있으면 보통 좋은 삶이란 행위자가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고 윤리적 주체를 쉽게 ‘행위자’로 표현해버려요. 근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행위가 다가 아니고 내가 어떻게 당하냐,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견디냐 역시 중요한데 나도 너무 쉽게 행위자라는 말을 썼나, 그런 생각을 오늘 다시 읽으면서 조금 했던 것 같아요.

보부아르의 윤리학도 행위자 모델인데, 머독의 비판이 그렇거든요. 왜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선택의 순간을 말하냐, 윤리에서 중요한 건 선택의 배경을 이루는 의식의 질이다, 평소에 무엇에 주의하는지, 수용하는지가 중요하다. 피행위자 기반의 취약함이나 ‘잘 당함’의 문제를 윤리에 예봉해내는 윤리학을 여성적이라고 한다면 남성적인 여성 철학과 여성적인 여성 철학도 나뉠 수 있고 후자의 것을 사실 남성들도 낼 수 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해요.

  1.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경쾌함, 비판을 질문과 대화로 전환해내는 철학의 역량을 하영에게 이 날 자주 느꼈다. ↩︎


Related Info



Loading.
slide 1
slide 2
slide 3
slide 4
slide 5
slide 6
slide 7
slide 8
slide 9
slide 10
slide 11
slide 12
slide 13
slide 14
slide 15
slide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