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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집’은 어디일까: 유통이 문학을 결정한다면

July 1, 2026



소설집 『숭배의 가치』가 지금의 형태로 출간된 과정에서, 오늘날 유통이 문학을 결정한다고 말해보자. 이는 아주 먼 길을 돌아 한국문학이 내게 돌아온 순간이기도 하다.

오어진이 내게 처음 소설을 보여줬을 때, 이 소설은 어느 신춘문예(혹은 공모전)에 응모한다며 A4 출력해 중철한 문서 더미의 형태였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 소설은 신춘문예에 떨어졌다. 그것은 이 소설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다만 제도화 및 전문화의 양식과 이 소설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배가 고프면 식당에 간다’처럼 ‘등단한다’거나 ‘수상한다’는 ‘작가가 된다, 작품 활동을 한다’의 동의어로 간주된다. 우리 문화에서 의존성이 매우 높은 경로이다. 누군가 소설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공모전에 내거나 영화제에 내는 것을 떠올린다. 즉 유통이 가치를 선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텍스트도 유통될 가치가 없어서 유통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유통으로 인해 그 가치가 만들어진다면, 그러니까 등단(수상)-청탁-출간의 순서로 하나의 ‘소설집’이 만들어진다면, 반대로 그 ‘소설’의 ‘집’을 구상하는 유통을 역설계하는 것이 가치를 설계하는 시작이다. 가치는 자신을 전달하는 경로(유통망)에 의존적이다. 그러니까 한 권의 소설집은 독자적인 유통 실천이다. 그것을 다시금 또 다른 ‘대안적이고 독립적인 제도’에 들고가서 입고 신청에 매달린다면, 그것은 필패의 구조이다.

문학만이 아니라 내가 미술 글을 쓰기 시작하며 마주한 인지 패턴이다. 미술’계’라고 표상되는 어떤 전시공간, 어떤 기획(자), 어떤 평론가, 어떤 작가와 연결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 기준은 특정한 미술이지 미술 일반은 아니다. 

현재 기록학을 전공하는 오어진은, 미술작가로서 이 소설을 쓰는 동안 2021년 개인전 《트리-트리-트리》, 학부졸업전 《안녕을 위한 베타테스트》를 치르며 2025년까지 개인 작업을 이어왔지만, 전시를 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미술이 놓일 곳은 어디인가? 나는 편집자 겸 발행인으로서 『숭배의 가치』를 문학의 지면인 동시에 미술의 전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본문 용지로는 사용하지 않는 모시종이를 사용해, 시각 언어로 신앙의 문제를 다루고자 했던 저자의 작업들을 캔버스와 같은 직물 질감의 지면 위로 불러와 전시하고, 모시종이의 강한 뒤비침을 이용해, 이미지에 문자가 문자에 이미지가 그 내용을 인식할 수 없지만 서로의 존재를 전사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책의 우면에는 소설이, 좌면에는 이미지가 병기된 책의 구조는 기성 종교 집단의 언어 밖에서 스스로의 신앙을 궁구하는 소설의 내용과 공명하는 동시에, 문학과 조형예술이 자신이 놓일 ‘집’과 유통 채널을 기성의 경로 바깥에서 만들어 가는 형식과 공명한다.

이는 책 자신의 주장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한 권의 소설집을 위해 다른 한 권의 학술번역서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일본의 낯선 기독교를 다루는 『가쿠레키리시탄』과, 이 책의 역자로서 오어진이 쓴 『숭배의 가치』는, 일본과 한국이라는 지리적 차이, 몇백 년이라는 시간적 차이, 박해의 극렬함과 일상의 미지근함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내부와 외부를 구별짓는 ‘낯선 이들’을 마주하려는 타자적 신앙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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