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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옷과 책인가

leeseungmin
2026-10-02

자다깨다를 반복하면서 15시간 정도를 잤다. ██와의 ████로 인해 무기력한 며칠이다. ██ ███와 ███ ██를 생각하면, 일상이 빚지고 있는 그것들을 알면서도 미뤄두어야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한 것이 하지 않은 것을 품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낮이 밤을 자신의 뒷면으로 품고 있듯 말하지 않은 것을 말이 품게 하는 방법은… 이런 생각을 더 할 겨를도 없이, 너무 좋은 날이 며칠이고 이어지고 있다. 옷과책에 드리우는 빛이 기쁘기도 하고 때론 잔인하기도 하다.

4시, “영화를 제작하고 영화와 그에 가까운 일들을” 하는 영시에서 영시서점을 운영하는 정환 씨의 방문. 영시서점은 영화 책을 전문으로 다루고 토요일만 오픈한다. 앞으로 출판, 워크숍 등으로 활동을 넓혀갈 예정이고, 토요일에는 큰 책상에서 작업을 하다 가도 좋다고 한다. “시스템에 안주하기보다 자기 시스템을 만들려는 것이 대단하다”고 옷과책의 인상을 남겨주었는데, 일찍이 현장에서 일하고 기획하는 정환 씨의 활동이 그러해보였다. 영시는 유시형 감독, 한예리 배우가 운영하는데 연기 워크숍을 시작하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잘 서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잘 서있을 수 있다면 숨쉬고 걷고 보고 느끼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왜 옷과 책이냐는 정환 씨의 질문에, 내 활동 전반의 맥락에서 설명했다. 매번 다른 상황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건내지는 같은 질문은 그렇기에 같지 않다. 그것에 답하려는 시도 또한 그 질문의 다름만큼 달라지고, 이해를 둘러싼 조건들을 조율하게 된다. 25살에 막연히 ‘창조적인 것’을 하고 싶었고, 우리 사회에서 예술이 그것을 대표하기에 비전공자로 창작과 비평을 시작했지만, 예술은 창조적인 것이다와 창조적인 것은 예술이다라는 순환 논증은 그 순환에 들어가는 제도적 경로를 강화하는 것도 같았다. 그것을 다시 보편의 언어로 번역하고 싶었기에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예술, 언어, 이론』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을 쓰면서 창조성은 예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상위 범주인 ‘언어’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미술 구술』을 쓰면서 언어는 말하는 쪽이 아니라 듣는 쪽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알았다. 잘 말하라는 규범에 앞서 내가 그것을 언어로 들으려는 의지에 따라서, 그렇게 무엇이든 언어로 상대함으로써 창조적인 것이 발견되며, 모든 것의 언어임을 듣고 또 말하는 풍부함이 내가 이해하는 문화적인 것이다. 따라서 언어를 대표하는 책을 다른 무엇과 함께 논하고 싶었고, 따라서 옷이 아닌 또 다른 무엇이든 올 수 있다. 커피라던가, 택배라던가…

주절주절의 설명을 듣고 정환 씨가 ‘그래야만 했던 흐름이 느껴진다’고 전해주어 다행스러웠다.

미술을 전공하고 또 가르치는 유진 씨, 지성 씨도 함께 방문했다. 유진 씨는 마침 사려고 했던 책이었다며 스기모토 타쿠의 『우리는 무엇을 듣고 있는 것일까』(오롤로북스, 2026)을 오래 살펴보고 구매해갔다.

지성 씨는 공간에 직접 만든 가구들(가령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소파)과 왕은지 디자이너의 가구들에 관심을 보이셨다. 어떤 것을 만들기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이 개인적인 아마추어리즘 실천인 듯하다.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예술, 언어, 이론』이 학교 도서관에 있었다며, 한 권 사가셨다.

지성 씨가 즉석카메라로 찍어 준 희수와 나. 얼굴 앞에 불쑥 찾아오는 카메라가 꺼려지지 않았던 것은 지성 씨의 호기심이 순수하게 느껴져서인 것 같다.

인왕산 데크길을 소개해주면서 배웅했다. 가는 길에 ‘많은 것을 경험시켜준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공간에서 각자 짝을 지어 이야기하는 틈이 생겨, 어제 밤에 떠올렸던 방명록 시스템을 마침 만들었다. 달력이나 하단 네비게이터에서 확인해보자! 정환, 유진, 지성 덕분에 무기력함을 많이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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