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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레키리시탄』 장별 요약

July 1, 2026



■ 1장: 서론  

1549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비롯한 이베리아 반도의 가톨릭 선교사들이 일본에 첫 발을 딛는다. 전국시대 남만 무역의 대가로 시작된 포교는 1639년까지 일본의 초기 기리시탄(キリシタン) 시대를 열지만, 이후 도쿠가와가 일본을 통일하고 네덜란드와의 무역을 시작하면서, 포교 이후 식민화로 이어지던 유럽의 식민주의와 일본 내부의 천황 숭배 및 쇼군 체제가 무너질 것을 우려해 기독교를 금지하고 선교사를 추방한다. 

그렇게 기리시탄들은 지하로 숨어 ‘잠복 기리시탄’이 되었고, 이후 250여 년간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위장하며 기독교, 신도, 불교가 공존하는 낯선 모습의 신앙을 지켜간다. 1865년, 미일수호통상조약으로 일본 내 외국인 성당이 건립되며 돌아온 선교사들을 기리시탄들은 열렬히 반겼으나, 선교사들의 눈에 그들은 더 이상 가톨릭이 아니었다. 이교도로 분류된 잠복 기리시탄들은 다시 두 갈래로 쪼개진다. 일부는 가톨릭으로 재개종하여 ‘부활 기리시탄’이 된 반면, 선조들의 기독교를 지키기로 결심한 이들이 있으니 바로 ‘가쿠레[숨은]키리시탄’이다.

오늘날 쇠퇴하고 있는 가쿠레 공동체의 신앙을 기록하고 연구하겠다고 밝힌 저자는 세 가지 이론을 제시한다. 1) 16세기 유럽 가톨릭의 보존, 2) 불교·신도·민간 신앙으로 위장한 기독교의 급격한 변형, 3) 기독교의 요소가 차용된 신종교.  저자는 이 중 하나의 입장을 단정짓지 않고, “여러 종교적 요소가 하나의 양식 안에 임시적이고 모호하게 공존하는 상태”로 정의되는 파이(Pye)의 혼합주의를 채택하여 종교 통합, 분리, 동화 등 여러 방향의 얽힌 가능성을 열어 둔다. 이는 필(Peel)의 다원주의 개념으로 구체화되는데, 다원주의는 ‘다수의 종교 전통이 혼합되지 않고 공존하는 현상’으로 가쿠레가 외적으로는 불교·신도 의례를 수행하면서도 내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는 상황을 설명해준다. 

이어서 “가쿠레키리시탄은 유럽 기독교와 비교되어서는 안 되며 그 자체로 연구돼야 한다”는 웰란(Whelan)의 입장 또한 비판적으로 수용된다. 비교를 포기하는 것은 연구를 빈곤하게 만들 위험이 있지만, 비교 기준으로서 “올바른 형태의 기독교” 또한 확정지을 수 없다.

또한 가쿠레를 유럽의 가톨릭과 비교하는만큼 일본 종교 및 사회 속에서도 비교해야 한다. 일본 종교는 교리를 중시하는 서양과 달리 의례에 기반을 둔다. 종교와 일상이 분리되지 않기에 벼를 심는 행위조차 의례가 될 수 있고, 교리에 기반을 두지 않기에 사상적 모순을 배제하는 서양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종교의 단위 또한 개인보다 가족(家)이며, 조상 숭배는 신도·불교와 공유하고 있다.

이상의 분석틀과 도구를 사용하겠다고 밝힌 저자는, 자신이 영국인으로서 갖는 편향을 인정하고, 가쿠레에서 관찰되는 신앙을 유럽 기독교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에 입각해 판단하지 않겠다는 현상학적 판단 중지를 선언한다. 고립된 환경에서 전통과 믿음을 지키고자 했던 신앙 공동체에서 기독교가 어떻게 문화변용을 이루었는지, 그 과정에 인류학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 2장: 가쿠레 신앙의 역사적 배경 

2장에서는 도쿠가와 막부의 단가 제도(사찰 단위로 인구가 등록되어 감시하는 제도)와 후미에(성화 밟기) 같은 가혹한 제도적 폭력이 어떻게 기리시탄 신앙을 지하화하고 가쿠레라는 특수한 심리적 지형을 형성했는지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1645년 쇼호 박해 등 피의 역사가 남긴 순교 유적들은 공동체의 트라우마적 기억을 결속하는 기제로 작동했고, 1865년 막부가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고 기다리던 선교사들이 돌아왔을 때, 유럽 가톨릭으로 복귀한 기리시탄과 선조들의 신앙을 지키기를 택한 가쿠레키리시탄이 분화한다. 오랜 박해에 대응하며 만들어진 비밀주의와 부인(否認)이 생존 전략을 넘어 공동체의 정체성으로 고착화되는 역사적 필연성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가쿠레 신앙의 독특성을 외부적 박해에서 비롯된 수동적 결과에 한정 짓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적 시선을 박해가 없던 16세기의 포교기로 돌린다. “파괴하기보다 대체”하고자 했던(일본 조상 숭배의 핵심인 본(盆) 축제를 가톨릭의 위령의 날로 대체하는 등) 예수회의 초기 포교 방식은 토착 신앙이 잔존하여 기독교의 문화변용을 촉발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가쿠레 신앙은 기독교 위에 신도와 불교가 의도치 않게 더해진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라는 웰란의 전복적 주장을 저자는 수용하지 않지만, 신앙의 변형이 박해기 이전부터 시작되고 있었음을 역설한다. 2장은 외부적 탄압의 역사와 내부적 습합의 기원을 동시에 살펴, 가쿠레 신앙의 역사적 뿌리를 다면적으로 재정의한다.

■ 3장: 가쿠레 공동체 구조와 가톨릭과의 관계 

3장은 정통 가톨릭의 제도교회가 부재한 상황에서 평신도들이 어떻게 독자적 권위 체계를 재구축했는지, 자치 조직의 역동성을 분석한다. 종교 박해로 유럽의 사제 계급이 떠난 극단적 단절 속에서 기리시탄 시대의 평신도 직무(동숙·간보)를 변형해 오지야쿠–오야지야쿠–야쿠추로 이어지는 위계 구조를 만들어낸 과정은, 종교적 권위가 하부에서부터 재조직될 수 있음을 경험적으로 증명한다.

하지만 제도적 자치력 이면에는 가톨릭의 칠성사(七聖事)가 단절되고 평신도가 집전할 수 있는 의례(세례성사)에만 모든 구원을 의탁하여 발생한 신학적 결핍이 자리한다. 저자는 이러한 종교적 고립이 가쿠레 신앙을 지켜준 동시에 오늘날 세례자 감소로 조직이 붕괴하게 된 필연적 한계를 대비시킨다.

■ 4장: 가쿠레 고젠사마의 기원과 용도

4장은 추상적 교리 체계가 사라진 자리를 물질종교(Material Religion)의 형상들이 어떻게 대체했는지 분석한다. 난도가미로 모셔지는 성물, 마리아 관음상, 청동 메달, 묵주 등, 가쿠레 신앙은 관념적 고백보다 물리적 성물의 보존과 관리로 계승되는 감각적 신앙 체계였다. 저자는 성물의 변모 과정을 추적하며, 유럽 가톨릭의 성사 개념이 일본 토착의 기물 숭배 및 가미(神) 관념과 조화를 이루어 박해의 감시망을 피하는 동시에 종교적 성스러움을 시각적으로 유지한 물질문화의 역설을 보여준다.

동시에 저자는 가쿠레 성물의 주술적 성격을 일본 종교나 박해의 맥락에 귀속시켜 기독교와 분리하는 입장을 거부한다. 16세기 유럽의 대중 가톨릭(popular Catholicism)은 이미 광범위한 주술과 신비주의 관습을 내포하고 있었다. 중세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주술과 종교의 구분이 아니라, 무엇이 이교도적 미신이고 무엇이 올바른 종교 관습인지였다. 그 결과 올바른 종교적 실천 안에 수많은 주술적 요소가 포함되었다. 토마스(Thomas)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만약 사람들이 어찌하든 주술에 의지한다면, 교회가 통제할 수 있는 주술이 훨씬 낫다”. 트리엔트 개혁의 목표도 주술의 제거가 비정통적 관습을 정통적 관습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기리시탄들에게 가톨릭의 성상 숭배, 성인과 순교자의 치유 능력, 묵주와 같은 도구는 신앙적 표현을 넘어 처음부터 주술적 요소였다. 더불어 예수회의 수용적 선교 방식은 신앙에 반하지 않는 한 지역의 민간 신앙과 전통을 묵인하거나 장려했고, 이는 기독교 전파에 그치지 않고 기독교 변형을 촉진했다. 일본 종교가 성물 의례에 영향을 미친 것은 박해와 잠복이 시작되기도 전이었다.

■ 5장: 기독교 순교자와 가쿠레키리시탄의 성지 

5장은 순교의 역사적 현장이 공간적으로 재해석되고 재영토화된 과정을 분석한다. 기리시탄 순교자는 가톨릭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대신 신도의 사당이나 신사의 형태로 보존되며 토착적인 ‘가미’로 신격화되곤 했다. 배타적, 초월적인 기독교의 순교 담론은 일본 신도의 포용적이고 장소 중심적인 가미 사상으로 흡수되었고, 박해 시대의 위장 전술은 영구적인 종교적 습합소로 안착했다. 

가쿠레 성지는 동시에 외부의 도전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역 가톨릭 신자들이 가쿠레의 성지를 미신으로 규정하고 숲을 벌목하려고 했던 사건처럼, 같은 순교자를 다른 방식으로 모시는 가쿠레와 가톨릭 교회 사이의 긴장은, 가쿠레 성지가 일본 종교와의 습합뿐만 아니라 제도 가톨릭과의 경합 속에서도 자신의 공간을 지켜야 했음을 드러낸다.

■ 6장: 가쿠레 전례력과 기도의 역할 

6장에서는 가쿠레 공동체를 기호학, 문헌학적으로 분석하여 가쿠레 우주관의 전회를 살핀다. 양력 가톨릭 축일을 음력 농경 의례 및 길흉일과 결합한 전례력, 하느님이나 마리아만 아니라 용궁의 오토히메까지 부르는 ‘가미요세’ 기도는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이 다신론적 구조 속에 편입되며 그리스도가 상대적으로 탈중심화되는 과정이다. 또한 가쿠레가 남긴 텍스트들은 기독교의 내세적·초월적 구원관이 가내안전과 풍작을 비는 일본 민속 종교 특유의 현세적 패러다임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전환은 가톨릭의 외적 형식이 완벽하게 보존되면서 내적 의미는 완전히 사라진 역설 속에 이루어졌다. 7세대에 걸쳐 구전된 기도문은 1600년 판 『도치리나』 기도문과 비교해도 놀랍도록 충실하게 보존되었다. 하지만 현장 조사에 따르면 의례를 집전하는 등기관조차 자신이 낭송하는 기도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기도의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음성으로 계승된 기도문은 가쿠레 신앙이 교리 기반에서 행위 기반으로 전회했음을 증거한다. 

■ 7장: 가쿠레 숭배 구조와 공동 식사의 중요성 

7장은 가쿠레의 종교 의식에서 공동체적 기능이 교리적 목적을 압도하는 양상을 비평한다. 엄숙한 오라시오(기도문) 영창 이후 행해지는 떠들썩한 연회는 일본 신도의 핵심 의례인 나오라이(直会)와 동일한 모습이다. 죄와 대속의 희생제였던 가톨릭 성찬례가 평신도 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일본 토착 축제와 겹쳐진 가쿠레 의례를 향해, 저자는 가톨릭의 미사인가 신도의 마쓰리인가 물으며 종교적 혼합 혹은 병치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 8장: 영적 세계와 가쿠레키리시탄 

8장은 가쿠레가 행하는 의례로부터 가쿠레의 영적 세계를 규명한다. 가미를 노하게 하면 지벌(祟り)이 내려진다는 믿음, 호닌(민간 기도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관습, 오텐펜샤로 악령을 쫓고 산주완사마의 성수로 지역을 정화하며 오마부리로 공간을 보호하는 퇴마 의례 등은 도교의 길흉 및 신도의 정결·부정(淨·不淨)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가쿠레의 영적 세계는 일본 종교에서 유래했다고 결론짓기 쉽지만, 저자는 결론을 보류한다. 16세기 유럽의 교구 사제 역시 성수를 들고 가정을 돌며 악령을 쫓았고, 출산을 돕고 질병을 치료하는 데 성수를 사용했다. 가쿠레의 정결 의례는 일본 종교만이 아니라 종교개혁 이전 대중 가톨릭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선교사들이 전한 대중 가톨릭의 주술적 태도가 가쿠레에 계승된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가쿠레의 영적 세계는 어느 한쪽의 전통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유사성에서 일치가 아닌 이탈을 본다. 먼저 신학적 차원에서, 가쿠레의 신적 존재인 가미사마에는 예수, 성모, 성인, 순교자, 오마부리 같은 성물까지 모두 포함된다. 신성이 위계적으로 구별되는 가톨릭의 신학적 질서가, 가미사마라는 평면 위에 나란히 놓이는 일본적 범신 구조로 재편된 것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일본의 가미를 악마로 규정했으나, 가쿠레에서는 예수 또한 가미로 숭배한다. 

다음은 실천적 차원이다. 고해성사의 죄와 대속이 정화 의식과 호닌의 자문에 의한 정결의 회복으로 대체되었다. 가미사마의 범신 구조가 만든 교리적 간극보다, 죄와 정결 사이의 실천적 간극이 더 크다. 영적 세계의 차이야말로 가쿠레가 기독교에서 가장 멀리 떠나온 영역이며, 그 거리는 무엇을 믿느냐보다 어떻게 실천하느냐에서 더 결정적으로 벌어진다.

■ 9장: 죽음, 조상, 가쿠레키리시탄 

9장은 조상 숭배와 일본의 가문(家) 체제가 200년 넘는 막부의 박해로부터 가쿠레 신앙을 숨기고 지켜준 보루인 동시에, 오늘날 가쿠레 자체를 잠식하고 있는 역설을 추적한다. 

막부는 단가 제도를 통해 모든 가구를 불교 사찰에 등록하고 불교식 장례를 치르게 강제했다. 가쿠레는 불교식 장례 전후로 시신 위에 성호를 긋거나 성수를 뿌리고 불경을 무효화하는 기도를 읊조리는 등 비밀스러운 이중 장례 구조를 갖춰, 지배층의 명령을 외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내적으로 극복했다. 

하지만 조상 숭배는 위장만이 아니었다. 일본 종교에서 죽은 자는 사령(死霊)이 되어 49일 동안 위패를 통해 분리되고, 시간이 흐르면 부처(仏)에서 조상(先祖)으로, 마침내 가미가 되어 지역의 영적 공동체에 편입된다. 예수회는 일본의 가미를 악마로 여겼지만, 가쿠레의 영적 세계는 가미 체계 안에 가톨릭을 포함시켰다. 순교자들은 천국이 아닌 가미의 세계로 편입되고, 예수, 성모 마리아는 위대한 기독교 가미사마로 숭배 받는다. 그 곁에는 약사여래와 해신 용궁의 공주도 함께 있다. 일본의 가미들은 유럽에서 온 또 다른 가미사마들에게 옆 자리를 내어주었다.

저자는 이러한 변형을 박해로 인한 외부 요인이나 일본 종교의 내부 요인으로 단정짓지 않는다. 예수회의 선교 정책은 이미 길을 열어 놓았다. 그들은 일본의 본(盆) 축제를 파괴하지 않고 위령의 날로 대체했고, 오늘날에도 오토보라이 의례로 남았다. 특히 중세 가톨릭의 연옥 개념은 조상을 위해 산 자가 의무를 다한다는 일본 토착 신앙과 자연스럽게 융화되었다. 다만 순교자들을 가문의 신으로 봉양하는 방식이, 가쿠레 신앙의 단위를 개인에서 가문으로 옮겨 놓았다.

조상 숭배 체계는 가쿠레 신앙을 지켜 준 동시에 가쿠레와 가톨릭을 분리시켰다. 19세기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고 돌아온 선교사들은 무엇보다 조상 숭배를 포기하도록 요구했다. 가톨릭으로 복귀한 이웃들이 불단과 위패를 파괴하자, 남은 가쿠레는 큰 충격을 받고, 조상의 신앙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가톨릭 사제들과 결별할 만큼 조상의 전통은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런데 이 조상은 누구인가? 19세기 종교 분리 직전의 조상인가? 혹은 17세기 안토니오 쇼헤이처럼 기독교와 일본 종교의 차이가 죽음을 감수할 만큼 깊다고 본 순교자인가? 혹은 16세기 선교 초기의 기리시탄인가? 그렇다면 가쿠레는 조상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목숨을 거쳐 지키려고 했던 차이를 흐릿하게 만들어 배반한 것은 아닌가? 9장은 그 다의성을 짚으며 마무리한다.

■ 10장: 맥락 속에서의 가쿠레 

10장은 엔도 슈사쿠의 ‘늪지대’ 은유를 통해 가쿠레 신앙의 성격을 규정하는 동시에 그 현재성을 성찰한다. 저자는 엔도의 은유를 역설적으로 반전시킨다. 기독교가 살아남은 것은 일본이 사상적 “늪지대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늪지대 덕분”이다. 하지만 생존에는 대가가 따랐다. 저자는 엔도의 나비 외골격 은유를 인용하여 묻는다. 가쿠레라는 기독교의 빈 껍데기가 만들어진 것인지, 그것을 망토 삼아 기독교를 내부에 지켜낸 것인지.

저자는 물음에 즉답하지 않는다. 가쿠레는 역사적 연속성과 변화의 역동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에, 연구를 시작하며 제시했던 세 유형 중 어느 하나로 깔끔히 분류되지 않는다. 저자는 “기독교는 기독교들이다”(스마트)라는 포괄적 정의와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큉)는 엄격한 정의를 양극에 두고, 가쿠레가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함을 확인한다. 가쿠레 신앙은 옛 가톨릭을 부분적으로 보존하되 박해 이전부터 변형되기 시작했고, 기독교를 버린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는 중심에서 밀려났다. 

가쿠레의 자기 인식은 양가성을 선명히 드러낸다. 한 이키쓰끼 가쿠레 신자는 “가쿠레가 아니라면 불교 사찰로 갈 것”이라 말했고, 고토에서는 반대로 말한 이도 있으며, 임종 직전에 가톨릭으로 개종한 기록도 있다. 가쿠레는 일본 내 다양한 기독교 종파를 둘러본 뒤 자신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답할 공산이 크다. 가쿠레라는 명칭부터 자신들의 신앙을 종교적 맥락보다 사회적·역사적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에 가쿠레를 위협하는 것은 타 종교가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변화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촌락의 폐쇄성이 지켜지지 않고, 계급을 이을 장남이 같은 마을에 살지 않으며, 여성에게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 성차별적 구조, 보편 교육의 확대 등은 전통을 이유로 의례를 정당화할 수 없게 되었다. 가쿠레는 숨었기에 신앙을 지켰지만, 은폐 자체가 가쿠레 신앙의 정체성이 되면서 내부에서부터 의미를 잃어갔다. 20세기 중반 이후 스스로 외부에 노출되기를 선택했지만, 이는 신자의 확장보다 기록과 보존의 요구에 가까웠다. 250여 년의 박해를 버틴 가쿠레는 오늘날 박물관으로 향할 위기에 처했다. 

그렇다면 가쿠레가 기독교에 어떤 기여를 남겼는가, 토마스(M.M. Thomas)가 말한 그리스도 중심의 긍정적 혼합주의로 기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독교 전체의 본질을 새롭게 검토하고 도전할 수 있는 독특한 관점을 가쿠레가 제공한다. 의미가 아니라 형식으로, 교리가 아니라 의례로, 믿음이 아니라 수행으로 종교가 어떻게 존속할 수 있는지, 살아 있는 사례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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