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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INDEX 1:: 『의향서들』

April 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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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향은 표명에 앞서는 기준이다.

표명은 대상을 전제한 의지이다.

일반적인 의향서는 계약에 앞선 논의들에 관해 서로 공통된 인식을 유지하자는 취지로 교환된다. 잠정적으로 동의한 내용을 명시하는 절차이므로 문서화되기까지의 치열한 의사 교환 흔적이 드러난다. 

이 책에 실린 의향서들은 누구에 의해 어떤 절차로 작성되었을까?

그 규칙은 표지에서 책의 제목보다 먼저 드러난다.

[1] 두 사람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둘러싼 대화를 나눈다.

[2] 두 사람은 종이집에 가서 원하는 종이를 고른다.

[3] 두 사람은 구매한 종이에 ‘의향서’를 출력한 뒤 서명한다. 서약된 계약서는 전시의 포스터로 쓰인다.

[4] 두 사람의 대화는 편지 형식의 ‘Letter of Intent’로 엮는다. 작성된 편지는 구매한 종이에 출력되어 전시의 리플릿으로 쓰인다.

[5] 두 사람은 계약서와 편지로 구성된 한 쌍의 의향서를 나눠 갖고, 전시장에는 이의 복사본을 배포한다.

이 규칙에 따르면 [1] 작가의 작품 세계라는 비대칭적 축을 두고 기획자와 작가가 대등하게 대화한다. [2] 종이라는 물성 매개를 통해 시각과 촉각을 맞춰 비언어적인 취향을 나누고, [3],[4] 합의된 감각 위에 서식을 채워 대표성을 부여한 뒤 [5] 의향을 통해 발생한 계약이 결국 사건으로 현현되었음을 공식화한다.

사건의 공범인 작가와 기획자는,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이라는 정서적 대칭을 이룬다. 

의향은 이미 정리된 마음이지만 교환 과정에서 흘러 넘칠 수도 있다. 이들은 서로의 의향을 서류라는 틀에 붙잡아 잊혀지거나 소모되지 않도록 대우한다. 서식은 유동성을 재현 가능성으로 전환한다. 이 책에는 서로 다른 의향서가 나란히 수록되어 있다. 책을 관통하는 두 개의 타공은 절차를 통한 의향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장치가 아닐까?

표지에서 드러난 맥락 외에도 본문 뒤에는 책 바깥으로 이어진 단서를 추적할 수 있도록 빈 서식, 매뉴얼, 기획자의 글, 전시·행사 이력과 짤막한 작가 소개, 판권 등이 공개되어 있다. 조건과 절차를 가감없이 드러내려는 이 투명한 태도를 본문에 수록된 개별 의향서들의 투명도와 대조해 보면 어떨까. 기획자는 판권에서 “고마운 분들”이라는 구분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방문해 주신 관객들과 놓쳐버린 모든 당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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