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수의 언덕』

『낙수의 언덕』

지음  정동규, 이정민

발행  텍스트프레스

쪽수  24쪽

크기  175x300mm

가격  8,000원

일시  2025년 10월 16일

ISBN 979 11 92023 04 5(03810)

Copy 40/150

8,000


Description

 

『낙수의 언덕』은 “2025년 9월 10일 수요일부터, 2025년 9월 12일 금요일까지, 부산 망미동, 낙수의 언덕에서 발신해, 부산 망미동, 텍스트 프레스가 수신한 글자와 이미지들”로 지은 책으로, 텍스트 프레스의 네 번째 진(Zine)이자 “부산 친구들” 선집의 첫 책이기도 하다.

 

24쪽에 불과한 이 책을 거듭 읽어도 책방 낙수의언덕과 출판사 텍스트 프레스를 온전히 알 수 없다. 작은멋쟁이나비에게서 “나를 보았다고 하면 너는 날개를 끄덕여 줄 수 있니”라고 묻는 그는 누구일까. 매일 광안리 해변에 앉아 있는 남자가 사라지지 않도록, 태풍이 부는 날에도 새벽 다섯시에도 달려가 지켜보던 그는.

 

 

알 수 없다. 그 알 수 없음에 나는 텍스트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앎’에 요구해 왔던 ‘온전함’은 무엇이었나. 문자로 환원된, 내가 곧장 수용 가능한 형태를 나는 ‘이해’라는 이름으로 요구해왔다. “사람들에게 방송 제작을 핑계로… 남의 삶을 마음대로 오리고 붙이고 무엇이 더 극적인 스토리라인으로 구성될 수 있는지만을 생각했던 날들”처럼.

 

이 책에 그런 ‘이해’는 없다. 나는 내가 바랐던 ‘온전함’과 ‘앎’의 관계를 자문한다. 이정민이 책방 일과를 마치고 3일간 전달했다는 파편적인 일기, 단상, 기억과 그것을 살피고 배치한 정동규의 디자인으로 지어진 『낙수의 언덕』을 나는 이해의 공간이라 부르고 싶다. 지금껏 내가 공간의 바깥에 서는 일을 ‘안다’라고 대상화했다면, “독자와 책 사이에 삶을 마련할 수 있는 출판사를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텍스트 프레스의 바람처럼 『낙수의 언덕』은 발신자와 수신자 어느 쪽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덕분에 앎은 있거나 없는 소유격에서 알아가거나 중단하는 행위격이 된다.

 

 

‘알겠다’는 말로 중단되는 앎이 아니라 ‘모르겠다’에 의해 지속되는 앎. 관심의 지속이 인식의 수용에 이를 때까지 내가 『낙수의 언덕』에 머물고 텍스트가 나의 곁에 머문 까닭은 이정민이 발신한 문자의 몫만은 아니다. 그것을 수신한 텍스트 프레스가 어떻게 서로 다른 두 언어를(즉 정동규와 이정민을, 문자와 시각을, 독자와 책을) 조율했는지, 디자인의 문제이기도 하다(1인출판사인 텍스트 프레스는 정동규에 의해 디자인과 편집이 함께 이뤄진다).

 

여기서 ‘수신했다’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관습적 용례는 아닐 것이다. 발산하고 내세우는 방식이 아닌, 주어진 것을 살피고 자리를 함께 찾아주는 『낙수의 언덕』의 시각언어를 ‘수신적’이라고 부를법하다. “작은 마음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의자를 놓자.”는 제안처럼 글자의 ‘작음’은, 흔히 가독성 논쟁이나 유럽의 미니멀리즘을 세련됨으로 받아들여 온 미적 관행과 무관하게, 독자에게 주의를 요구하는 섬세한 마음으로 작동한다. 두 마리 나비만 놓인 표지, 날개면에서 곧장 시작되는 이야기, 이 또한 출판 디자인 관행에 의식적으로 도전하는 전문가적 시도가 아니라, 갑작스럽게 자신을 드러내고 더 알기도 전에 사라져버리는 타자의 특성으로 감지된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의 막막함에 짓눌려 있을 때, 『낙수의 언덕』이라는 진(Zine)의 가뿐함을 거듭 떠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