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CHI : Burnt red tights

GOCHI : Burnt red tights

30 데니아로 얇게 비치는 자줏빛이 옅게 도는 붉은색 디자인,
붉은 실이 엉긴 듯한 배경에 탄 자국이 포인트로 들어가 있다.

 

고치의 하우스지기 성은림

28,500

4 in stock


Description

C: 유학은 언제 갈 것 같아요? 성공적으로 합격하게 되면,

 

L: 어플라이 자체는 내년 초인데, 사실 엄청 빠듯하게 하는 거라. 내년에 써보고 다른 일들 하면서 내후년에 다시 좀 더 정식으로 쓸 것 같아요. 엔트워프는 합격해도 1년 미룰 수 있거든요. 그래서 돈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으면, 고치랑 타투(해체)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C: 화이팅입니다. 그럼.. 고치 이야기를 해볼까요.

 

L: 음 일단. 최근에 그렸던 작업들이 무의식적인 경로에서 떠오른 이미지를 옮겨 놓은 작업들이 많아요. 제가 못 느낀 걸 그린 건 거의 없더라고요. 정리를 하다 보니 제 모든 작업에 드로잉이 맞물려 있더라고요. 그것들을 보며 든 생각은, 생의 타임라인은 전개가 되는데 우리는 많은 일을 마주하고 또 하나의 신체로만 그 모든 일들을 겪어야 하잖아요. 그게 엄청나게 끈질긴 일관성과 지속성을 필요로 하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그 감각을 견딜 수 없더라고요. 헤어졌을 때 사람들이 머리를 자르는 행동같은 것들은 생의 큰 변화나 굴곡 안에서도 끈질긴 지속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걸 견딜 수 없어 찾는 어떤 작은 변화를 모색하는 갈망의 포인트라 생각해요. 그래서 신체 일관성은 모종의 탈피에 대한 감각으로 이어지죠. 그게 첫 번째 단계였던 것 같고, 함정 같은 것에 갇혀 있는 신체와 어떤 허물을 벗고 탈피하고자 하는 욕망이 출발점인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탈피에 대한 갈망만 있지 하나의 신체를 결국에는 벗지 못하잖아요. 한 신체가 유지되는 동안 수많은 분열적인 자아들이 교차하면서 분절된 상태를 감각하는 상태에 놓이는 것 같아요.

 

C: 탈피를 하고 싶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 안쪽으로, 정신적으로 분리를 시키는 거군요.

 

L: 네 탈피를 할 수 없으니까 아이덴티티를, 정체성 자체에 대한 분열로 이어지는 거죠. 현상학에서의 자아 분열이 그래서 좀 재미있었는데, 현상학에서는 자아 분열을 ‘자기 경험의 분절화’로 보더라고요.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신체적 경험과 의식적 경험이 분리될 때 자기로부터 이탈한 감각을 느끼고, 신체를 자아가 살고 있는 나로 느낌과 동시에 타자로 느끼기 때문에 자아는 항상 미세한 균열을 내포한다는 말을 했죠. 이 말을 보고 신체가 나임과 동시에 나를 구속하는 ‘경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럼 미세한 자아 균열과 자기 자신을 탈피하고자 하는 욕망이 신체의 일관성과 충돌할 때, 나는 고치의 의상과 타이즈를 신체의 확장된 피부로 이해하는 게 아닐까. 고치를 그 균열이 드러날 수 있는 ‘경계’로 보고. 신체라는 허물로서의 경계에 집중하면서, 무엇으로 되는 그 과정 자체를 감각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C: 그래서 고치라고 선택했을 것 같기도 하네요.

 

L: 네, 그런 중간상태. 전이되지 않은 상태요. 궁극적으로 어떤 한 상태에 종착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항상 계속해서 중간 상태에 놓여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 고치라고 한 것도 있어요.

 

C: 은림씨가 하고 싶은게 많아서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항상 걷고 있는 상태 같은. 은림씨 인생이랑도 맥락이 맞는 것 같아요.

 

L: 맞아요. 이 liminal. 이거 제 아이디잖아요. 그냥 제 이름 림자에서 따온 건데 리미널이 밈으로도 많이 쓰이고, 이게 어원이 재미있더라고요. 사이의 상태. 아직 새 정체성을 얻지 못한 중간기.

 

C: 그 왜 리미널 스페이스라는 말도 있잖아요. 어떤 공간과 공간을 잇는 복도만 계속되는. 말 그대로 ‘중간지점’만 계속 되는 공간이잖아요.

 

L: 맞아요. 정확한 어원은 ‘Limen’이라는 문턱에 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인데, 너무 좋더라고요. 이게 마음에 들어서 옛날에 일기장에 적기도 했었어요. 어렸을 때 예종을 준비하거나, 계원예대를 다니는 식으로 개념 미술을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는데, 그들이 하는 시각 작업, 내가 배우는 시각 작업과 저랑 완전히 딱 맞는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시각 언어는 좀 더 문턱에 있는 것 같다, 경계에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과 후, 그사이를,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싶어요.

 

C: 너무 재밌다. 고치뽕이 차오르네요. 그럼 고치 이전으로 돌아가서, 은림씨는 처음에 미술을 왜 시작하게 됐어요?

 

L: 처음에, 그런데 사실 별거 없어요. 저는 미술 학원부터 다닌 건데, 얼떨결이었어요. 미술 학원 선생님들이 계속 어머니한테 얘 미술을 시키세요 했었고.. 그때 제가 했던 건 미술이 아니라 기술이었던 것 같아요. 모순적이게도 미술을 그만두려고 마음먹었을 때 저는 미술을 시작했어요. 그때 저는 하얀 종이위에 막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이 되게 신기했거든요. 저는 흰 종이를 보면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난 미술할 사람이 아닌가 하던 즈음에 내가 미술을 해본 적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시각 언어도 언어고 필요한 단어나 문법을 알고 있어야 그걸 통해서 할 말이 생길 것 같았는데, 내가 그걸 익힌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입시를 그만두고 이상한 화실을 다녔어요. 그냥 야외 드로잉 시키고 맨날 한강에 던져놓고 놀고 사진 찍고 하던 화실이었는데.. 그런 시기를 겪다가 희수님도 만났었죠.

 

C: 아? 그 화실에 희수님이 있었나요?!

 

L: 아니요. 그때 예고에서 뭘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너무 답답해서 무작정 네이버 블로그를 읽다가 희수님의 낚시에 관한 글을 봤어요. 물건을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낚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이야기었어요. 그날 바로 희수님한테 연락을 하고, 수업을 했었어요. 그 수업을 통해서, 이제까지 내가 배웠던 건 기술이었고, 이제야 시각 언어를 구성하는 단어나 문법을 배우는 거구나 했었어요.)

 

C:그렇게 미술에 첫 발을 내딛었던 거군요. 그렇게 배우고 싶던 단어나 문법을 알고 나서 시각 작업을 할 때는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L: 이번에 조희수 감독님의 영화 ‘신원미상’ 작업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이미지화된 시나리오를 미술 감독으로서 구현하는데 어떤, 사냥의 감각을 느꼈어요. 과녁같은 움직이는 무언가를 점점 좁혀 나가면서 니즈에 맞게 구현하는 일이니까요. 감독이었던 희수님이 사냥의 감각을 가지고 창작을 하는 분이라서 그 움직임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C: 음, 영화 미술 작업을 할때의 감각이 그렇다면, 스타킹이나 타투에 관해서도 비슷한 게 있나요?! 고치나 해체요. 그것들을 할 때의 감각도 자유롭게 말씀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타투도. 어떤 받는 사람들의 니즈를 맞춰야 하니까 비슷할 것 같네요.

 

L: 해체는 제약이 엄청 명확하게 있죠. 영화가 공동 작업이라 공동의 니즈가 있는 것처럼 해체는 1대 1의 니즈를 맞춰야 하는거죠. 저의 니즈와 손님의 니즈를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사냥의 감각은 똑같은 것 같아요.

 

C: 이미지 사냥꾼 같은 거군요.

 

L: 네, 해체로 보여지는 추상화된 기호는 너무 파편적이라 어떤 이야기가 되지 않고, 단상으로 끝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뭔가 제 작업물이 어떤 방식으로든 쓰임이 되는 것에도 중요한 사람인 것 같아요. 정확히 말하면, 침투욕이 있는 것이죠.

 

C: 옛날에 말씀하신 음악이 갖는 구조에 관심이 있었다는 이야기랑 이어지는 것 같아요. 음악이 관객과 맺는 관계가 흥미로워서 타투를 통해, 그리고 스타킹을 통해 사람들과 더 닿을 수 있는 방향을 찾으셨다고.

 

L: 맞아요. 화이트 큐브에서는 관객과 이미지가 기본적으로 거리감을 유지하게 된다고 느끼는데, 저는 더 사람들과 긴밀하게.. 침투하고 싶고 안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그리고 바늘은 실제로 피부 안에 들어가잖아요.

 

C: 말그대로 침투를 하는거네요.

 

L: 한 사람에게만 이지만, 그 사람에게 제대로 감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한 생각인데, 어떤 사람을 논리적으로 설득시키는 것보다 매혹시키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이성보다는 욕망이나 본능 같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설득이 되는 걸 하고 싶고, 제 이미지를 보고 받고 싶다고 욕망하는 그 관계성이 좋은 것 같아요.

 

C: 음 은림씨 이미지를 보고 이걸 내 몸에 평생 가지고 살고 싶다는거죠.

 

L: 맞아요, 그런 침투가 좋아요. 또 다른 가지의 이야기인데, 테크노를 듣고, 클래식을 듣고, 재즈를 듣고, 그 음악에 따라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르더라고요. 

 

C: 음 그럼 클래식은 어떻고 테크노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L: 하우스 dmb에 가까운 음악은 타투의 추상이 떠오르더라고요. 어떤 선의 흐름이라던지, 짧게 짧게 여러 이미지가 변주되고 움직이면서 떠오르는 형태였어요. 클래식을 들었을 때는 사진이었던 것 같아요.

 

C: 어떤 사진이요?

 

L: 네 밧줄 자국이 남은 몸이 생각이 났어요. 이게 섹슈얼적인 몸이 아니라, 꽁꽁 묶여있는, 아까 이야기한 하나의 신체가 구속되어있는 감각을 엄청 세게 느꼈었어요. 시각적인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조성진의 연주회였는데 엄청 자유롭게 움직임을 통제하면서 표현하는 공연이었어서. 자유로운 동시에 통제된 것이니까. 손의 움직임과 음악이 결합되면서 신체가 구속된, 갇힌 이미지가 떠올랐었어요.

 

C: 오 재미있는데요. 작업을 할때의 감각은 이렇고..  그럼 고치를 운영 하면서 어려웠던 때가 있었어요?

 

L: 사실 없어요. 고치를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거.. 작업적으로는 너무 재미있고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경영이나 마케팅적인 부분이 어려워요.  광고라던지. 다음 시즌을 하려면 이번 시즌으로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들이죠. 사실 돈을 벌려고 고치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고치는 그냥 어떻게 하면 더 재밌을까 하는 것들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C: 이걸 들어보니까, 은림씨가 작업을 하는데 매체로 브랜드를 선택해서 작업하는 느낌이네요?

 

L: 완전 맞아요. 제게 고치는 단순히 사업이라기보다, 작업을 담아내는 하나의 땅으로 기능하는 것 같아요. 플랫폼의 어원이 flat(평평한 땅)과 form(형태)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말이더라고요.  패션,  회화, 영화, 타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활동하니 제 땅이 있어야 이것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각자가 따로 기능한다기보다 제가 다루는 것들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어서 생태계가 구축된 상태. 살아 움직이는 것. 땅. 플랫폼이 필요했어요.

 

C: 그럼 영화 미술 감독, 고치, 해체… 지금 하고있는 것들을 이렇게 변형시키고 싶다는 계획이나 더 다루어보고 싶은 분야가 있으신가요?! 전에 디제잉도 배우셨다고 들었어요.

 

L: 네 맞아요. 일단, 하우스 고치로서는 의상 라인을 만드는게 근미래의 목표에요. 단순하게 확장시키는 건 아니고, ss나 fw같이 시즌별로 만들기보다, 정말 만들고 싶은 아이템을 하나씩 하나씩 발매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이걸 작업 매체로 생각하다 보니까 작업이나 재미있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고 그에 맞춰 사냥을 했던 느낌에서, 저와 제 작업을 좀 더 동일시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전 제가 입고 싶은 걸 만들고 싶거든요. 그게 솔직한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걸 해야 눈에 띄겠지 하는 것보다 제가 진짜 자주 입게 되는 것. 제가 갖고 싶은 것들을 만들게 되는거죠. 

 

C: 이번에 영화 참여했을 때는 어떠셨어요 그것도 궁금해요. 

 

L: 너무너무 재미있고.. 영화 미술 작업은 허구적인 세계에 기둥을 세우는 일인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당장의 욕망을 치중하기 보다 정성스럽게 보류하고 치밀하게 설계하는 방식이 필요했어요. 의도된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구현해야 할지 이번 영화 작업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보니 이후에 브랜드 룩북 작업을 훨씬 쉽고 재밌게 한 것 같아요. 또 영화 미술 작업을 하다보면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평범한 것도 만들기도 하는데, 그게 좀 어려웠어요. 의도된 것처럼 보이지 않게 설계하는 것이요. 그래서 고치도 마냥 예쁘기만 하다기보다는 그 하우스가 가지는 고유의 모서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생각하고 있어요.

 

C: 맞아요. 뾰족하게 찌르는 부분이 있어야 오래 잘 되는 것 같아요. 음 그럼 또 뭔가 새로운 매체를 건드리고 싶으신가요.

 

L: 사실 지금도 엄청 많이 혼나요 좀 적당이 하라고. 하고 싶은 건 진짜 많은데, 최근에는 조형 작업을 너무 해보고 싶어요. 다른 물성들도 써보고 싶고.

 

C: 나중에 바도 운영하고 싶으시다고.

 

L: 맞아요. 진짜 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잔소리를 듣지 않고 일을 벌릴 수 있을까 하다가, 조금이라도 합칠 수 있는 걸 합쳐보자 고민을 했어요. 고치 쇼룸에 바를 놓는 생각을 했고, 그 바의 모든 직원들은 고치의 클래식 라인을 입고 있는 상상.. 와인이나 음식 메뉴나, 제가 여행을 자주 다니니까, 여행을 하다가 마주한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구성을 하고 싶어요. 제 취향의 집대성인 것들인거죠. 

 

C: 오오 재미있네요. 고치와 해체, 은림씨 취향이 집대성된 바.

 

L: 제가 옛날 노트를 봤는데, 1월 1일에 제가 토끼를 그려놨어요, 낙서로.  토끼를 두마리 잡으려고 하면 놓친다고 하잖아요. 그 전 해에 다른 길에 있는 토끼 두마리를 잡으려다 두마리를 다 놓친 것 같아서, 다음 해에는 그렇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한 마리 토끼만 욕심 낼 자신이 없는거예요. 그래서 이제.. 두마리 토끼를 잡되 되도록 같은 길에 있는 녀석들로 잡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이게 일종의 새해목표.

 

C: 뭔가, 다른 길의 두마리 토끼를 잡는다기보다 한 길을 선택해 한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다른 길에 ‘영향을 줄 수 있는’토끼를 더 잡는다는 말씀이시군요.

 

L: 맞아요!

 

C: 토끼 사냥을 응원합니다!

 

L: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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