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쿠레키리시탄』

『가쿠레키리시탄』

지음  스티븐 턴불

옮김  오어진

편집  이여로

디자인  김희경

자문  김병락

한국어판 부록  나카조노 시게오

부록 번역  이경은

감사  양현, 이휘, 최정화

 

쪽수  416쪽

판형  152*220(mm)

제작  지케이씨

제작 총괄  엔페이퍼(박수현)

제작 협력  더프레스(조철옥) 

 

발행처  기획:1 

발행일 2026년 5월 11일

ISBN  9791196604967

 

16세기 일본에 전파된 기독교는 박해를 피해 불교, 신도, 토착 전통으로 위장하며 탄압과 처형을 견뎠지만, 19세기 돌아온 유럽의 선교사들에게 이교로 배척 당한다. ‘숨은 기독교인’을 뜻하는 가쿠레키리시탄, 이들의 낯선 신앙은 기독교란 무엇인지 검토하고 사유하는 자리이다. 

 

가령 믿음은 정통을 상징하는 교리와 제도에 있는가? 시대를 견디며 끝없이 변화하는 실천과 포용에 있는가? 저자는 유럽 가톨릭을 기준으로 이들의 신앙을 판단하지 않는다. 현장 연구를 통해 가쿠레에서 관찰되고 표현되는 신앙을 바로 그들의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가령 가쿠레의 주술과 조상숭배는 기독교가 아니라고 판단한 결정적 이유였지만, 저자는 그것이 중세 가톨릭에 이미 포함된 것이었고 예수회의 선교 전략이었음을 역사를 통해 밝힌다. 반대로 가쿠레 기도문은 16세기 기독교를 완벽하게 보존한 증거로 간주되지만, 신도들은 교리적 뜻을 모르고 다만 수행 자체를 중요시하고 있었다. 기독교와 가쿠레의 차이는 유사성으로, 다시 유사성은 차이로 이탈하기를 반복한다. 종교의 언어가 손쉽게 타자를 판단하고 전쟁과 혐오의 빌미로 오용되는 오늘날, 가쿠레 신앙은 타인을 단면만으로 판단하기 불가능하다는 역사적 사례인 셈이다.

 

일본의 낯선 기독교 가쿠레에 관한 이 연구는 신학과 종교의 맥락을 넘어선 의미를 갖는다. 공동체를 지켜준 원칙이 어떻게 공동체를 쇠락하게 했는지, 제도 바깥에서 새로운 믿음 시스템이 자생할 수 있는지, 공동체와 바깥이 맺는 타자적 관계의 역동성과 복잡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 자신이 예술대학에 진학하며 제도 교회 바깥에서 자신의 신앙 언어를 찾아가고 있듯, 『가쿠레키리시탄』출간을 통해 우리는 타자의 신앙으로 지금 한국에서 신앙 속 타자를 사유하자고 제안한다.

 

33,000


Description

01  가쿠레키리시탄은 누구인가

1549년, 남만무역을 대가로 유럽의 가톨릭 선교사들이 일본 포교를 시작하지만,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막부가 기독교를 금지하고 선교사를 추방하면서 채 100년이 되지 않아 초기 기리시탄(キリシタン) 시대가 막을 내린다. 포교를 수단 삼은 유럽의 식민주의와 일본 내부의 체제 붕괴를 우려했던 것이다. 그렇게 지하로 숨어 ‘잠복 기리시탄’이 된 이들은 250년 가까이 때로는 탄압에 저항하고 때로는 기독교, 신도, 불교, 토착 전통이 공존하는 낯선 모습으로 위장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지킨다. 미일수호통상조약으로 1859년에 돌아온 선교사들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선교사들의 눈에 그들은 더 이상 가톨릭이 아니었다. 이교로 배척된 기리시탄 일부는 가톨릭으로 재개종하여 ‘부활 기리시탄’이 되었지만, 선조들의 기독교를 지키기로 결심한 이들이 있으니 바로 ‘가쿠레[숨은]키리시탄’이다.

 

02  기독교란 무엇인지 묻는다

막부의 탄압과 선교사의 배척을 모두 겪으면서까지 이들이 지켜 낸 신앙은 대체 무엇인가? 한국에는 〈사일런스〉(마틴 스콜세지, 2016)같은 미디어를 통해 잠복 기리시탄이 성화를 밟고 처형 당하는 모습이 기독교적 희생의 사례로 소개되었지만, 가쿠레키리시탄은 오히려 기독교란 무엇인지 묻는다. 신앙은 과연 정통을 상징하는 ‘교리와 제도’에 있는지, 시대를 견뎌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실천과 포용’에 있는지, 정통과 순수라는 개념이 기독교 역사에서 어떻게 (불)가능했는지, 문화변용된 기독교의 신학적 한계선은 어디인지, 제도 교회 바깥에서 신앙 체계가 스스로 조직될 수 있는지, 가쿠레는 기독교 전체의 본질을 새롭게 검토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자리이다.

 

03  종교인류학: 다른 무엇이 아닌 그들 자신의 신앙을 이해하기

가쿠레 신앙은 흔히 1) 16세기 유럽 가톨릭의 보존, 2) 불교·신도·토착 신앙이 뒤섞인 기독교의 변용, 3) 기독교가 차용된 신종교라는 세 이론으로 설명되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하나의 입장을 단정짓지 않는다. “여러 종교적 요소가 하나의 양식 안에 임시적이고 모호하게 공존하는 상태”를 정의하는 혼합주의 개념을 빌어, 유럽과 일본의 사회 및 종교 전통을 비교하며 가쿠레 신앙에 인류학적으로 접근한다. “기독교는 기독교들”(스마트)이라는 포괄적 정의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큉)이라는 엄격한 정의 사이에서, 저자는 영국인으로서 갖는 자신의 편향을 인정한 뒤, 가쿠레에서 관찰되고 표현되는 신앙을 옳고 그름에 입각해 판단하지 않겠다며 현상학적 판단 중지를 선언한다.

 

04  타자의 신앙으로, 신앙 속 타자를 사유하자는 제안

1998년의 학술서를 2026년 한국에서 번역 출판하며, 우리는 ‘타자의 신앙’을 사유하기를 제안한다. 한국의 기독교 또한 그 시대적 특수성 속에서 문화변용을 겪으며 자리 잡은 바, 1593년 임진왜란으로 기리시탄 다이묘와 동행한 가톨릭 사제가 한 순간 조선 땅을 밟았고, 1784년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은 실학자 이승훈을 시작으로 가톨릭이 자생했으며, 19세기 후반 조선의 개항과 함께 개신교 선교사들이 의료 및 교육기관을 설립하며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에 호응했다. 그렇게 한국 사회 중심에 개신교가 자리잡았지만 변방에는 여전히 민중신학, 생태신학, 여성주의신학, 퀴어신학 등이 기독교 내부의 타자로 남아 있다.

종교의 언어가 타자를 손쉽게 분류하는 수단이자 전쟁과 혐오의 빌미가 되는 오늘날, 가쿠레 신앙은 타자를 일면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역사적 증거이다. 가령 가쿠레에서 관찰되는 주술적 요소는 일본의 토착 문화에서 비롯된 비-기독교적 요소로 간주되지만, 저자는 16세기 유럽의 대중 가톨릭과 정통 가톨릭 모두에 이미 주술적 요소가 내포해 있었다고 역설한다. 19세기 선교사들이 가쿠레를 이교로 판단한 결정적 요소는 조상 숭배이지만, 16세기 일본에 선교한 예수회는 조상 개념을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연옥이나 위령의 날로 대체하려 했다. 이교로 분류될 정도의 차이가 역사적 연속성으로 밝혀지는 동시에, 역사적 동일성은 차이로 이탈한다. 가쿠레 기도문은 16세기 가톨릭 기도문을 완벽하게 보존했지만, 정작 기도를 외는 가쿠레 신자들은 더 이상 그 교리적 뜻을 알지 못했다. 일본 특유의 수행적 측면이 강조되어 물질종교화된 것이다.

일본의 기독교사를 통해 신앙에서 타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당대 가쿠레 신자들에게 그러했듯 이는 역사나 사회의 문제 이전에 각자가 삶에서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미술 작가 겸 기록학 연구자인 역자 오어진은 한국 개신교 가정에서 나고자라며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가졌지만, 예술학교에 진학해 교회의 언어로 죄악시되는 타자들을 사랑하는 이웃으로 만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세계가 두 갈래로 분열되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을 쉽사리 부정하지 않고, 『가쿠레키리시탄』이라는 가깝고도 먼 이웃 나라의 역사를 매개하여, 지금 이 땅의 우리들에게 타자의 문제를 신앙을 통해 사유하기를 제안하고 있다.

 

05  동시대 가쿠레 연구자 나카조노 시게오의 한국어판 특별 부록

이 책이 발간된 1998년 이후에도 가쿠레 연구는 일본 연구자들에 의해 민속학, 종교학, 고고학, 예술사 등의 맥락에서 크게 개진되었다. 이에 동시대 가쿠레 연구자 겸 이키쓰키초 박물관 관장 나카조노 시게오(b.1963)의 「가쿠레키리시탄 신앙 연구의 과거와 현재」(2025)를 한국어판의 부록으로 청탁하여 수록했다. 스티븐 턴불의 본 저서를 비롯 지금까지의 가쿠레 연구가 속했던 지정학적 맥락을 비교 고찰하며, 특히 가쿠레 신앙을 기독교의 변용이라 보는 일명 ‘금교기 변용론’을 거부하고, 16세기 기리시탄 신앙의 계승으로 보는 동시대 연구의 맥락과 갈래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에도 시대 말기 이후 일본에 들어온 …근대의 기독교는 개인의 도덕적 규범으로서의 측면이 강해 16~17세기의 마을이나 가정 등 공동체 신앙으로서의 존재 양태를 유지하던 기리시탄 신앙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기리시탄 신앙은 일본인의 삶에 단단히 결부된 기독교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 일본인의 기독교란 무엇일지 다시 생각해 볼 실마리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는 한국어판 특별 부록이 일반 독자와 연구자 모두에게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스티븐 턴불(Stephen Turnbull, b.1948)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신학과 군사사학에서 두 개의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리즈대학교에서 일본의 가쿠레키리시탄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 논문으로 1998년에 일본 문학상을 받았다. 동아시아학과 신학을 가르친 바 있으며, 현재는 은퇴하여 리즈대학교 명예교수, SOAS대학교의 연구원, 아키타국제대학교의 일본학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다수의 상을 받은 전략 게임 〈쇼군: 토탈 워〉를 포함하여 영화, 텔레비전 등과 관련된 수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는 일본 남북조시대의 전쟁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오어진 (b.1997) 

한국 개신교 문화에서 성장한 개인의 역사와 예술 실기를 전공하면서 겪은 분열 속에서 종교, 믿음, 제의 형식을 시각 언어로 탐구해왔다. 지금은 기록학계에 몸담아, 생산과 기록을 순환하는 예술 아카이브 구축을 목표로 한다. 작가들의 디지털 컬렉션 구축 및 아카이브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기획, 번역, 기록 등 다각도의 예술 실무 활동을 병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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