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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 코스프레 – ‘입기’와 ‘입혀지기’는 분명 차이가 있다. 코스프레가 특정 세계관과 캐릭터를 선행 조건 삼아 착용자를 그 안에 위치시킨다면, 패션은 착용자의 주관이 개입한 이후 캐릭터와 세계관이 형성되는 역방향적 구조를 따른다.

February 2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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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모델을 따라한다고 가정을 해보자. 예를 들면 지드래곤. 내 엄청난 추구미였다. 많이 회되는 생로랑 풀착장이나 샤넬 착장이 있지만, 좀 다른 걸 예로 들고 싶다.

최근이다. 발레리나 슈즈를 신고, 체크 블레이저에 부츠컷 청바지. 이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렵지만 차용한다고 치자. 발레리나 슈즈가 완판되고 체크 블레이저가 유행하고 그걸 따라간다. 그 ‘따라함’이 일정 단계를 넘어서면 옷 뿐만 아니라 머리스타일, 메이크업, 네일을 지나 걸음걸이나 행동까지도 카피하는 양상을 띄게 된다. 그 영역은 코스프레다.

많은 사람들이 ‘이거 누가 입었던 거야’ 하면서 옷을 따라 입고, 라이프 스타일도 복사를 한다. 이 영역은 대부분이 ‘패션’이라고 부르고, 패셔니스타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칭송하지만 사실 코스프레라는 것. 그렇다고 코스프레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패션과 코스프레의 다른 지점을 알고 코스프레를 하는 것과 패션을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코스프레의 구조를 따져보면 세계관 -> 캐릭터 -> 나 의 순이다.

반대로 패션의 작동 구조는 나-> 캐릭터 -> 세계관 의 순이다.

옷을 끝없이 사고, 실제로도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공허하고 계속 소비하게 되는지 이 글을 쓰면서 감이 잡혔다. 공간을 운영하면서 나만의 것,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에 대한 생각을 했는데, 내가 쫓아다니고 있던 건 다른 사람이 인정하는 어느 정도 수준의 ‘미감’ 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내려놓고 평소에 좋아하는 것과 내 성향에 집중했더니 꽤 마음에 드는 작업이 나왔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방향대로 해야 하는 것 같다.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코스프레를 할만한 세계관과 인물은 끝없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와 더불어 나도 계속해서 바뀌는 인물들을 따라다니느라 끝없이 스타일이 달라졌던 것 같다. 처음 시작은 많은 스타일을 경험해보면서 나한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알기 위함도 있었는데, 이게 한 번 관성이 생겨 여기저기 떠돌다 보니 유목 민족이 되어버린 셈이다.

여기서 코스프레라는 말의 위상 때문에 ‘에잉 남 따라하면 다 코스프레야-?’ 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다른 사람의 세계관을 따라한다는 코스프레는 생각만큼 가볍지 않다. 코스프레를 한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있나? 제대로 하는 사람은 말도 안되는 수준의 ‘재현’을 한다. 신체를 이용한 재현이라는 점에서 연기와 다를 바 없다. 애초에, ‘cosplay’‘costume’ + ‘play’로, 특정 역할·인물·시대·직업을 나타내는 복장을 입고(costume), 놀이, 연기, 역할 수행, ‘~인 척하기’ (play)니까. 말투, 행동, 태도를 포함한 잠시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는 꽤나 수행적인 행위다. 그렇게 끝없이 다른 세계를 따르는 일이 행복하고 좋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겠지만, 나는 그 행위가 지루했다. 매번 달라지는 누군가를 뒤쫓는 일은 정답이 정해져있는 터널을 왕복하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세계를 얼마나 잘 재현했느냐는 평가까지 따라오니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이 달리기만 했다.

어떤 장르든, 어떤 스타일이든 그 안에 포섭되기 위해 선택하는 착장은 결국 개인의 스타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단체복’에 가깝다고 느낀다. 딘드밀리든 퍼포머티브 메일이든, 고스, vkei, 모드, 요즘 인스타에 도배되어 있는 포엣코어든, 마찬가지다. “이렇게 입으면 펑크인가?” 하고 멈칫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질문이 뉴런에 스치는 순간, 이미 옷은 나를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어떤 집단에 속하기 위한 모종의 완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본래 착장은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수트를 입으면 건들거리고, 소위 말하는 양아치같이 입으면 오히려 정자세가 편하다. 청개구리 심보다. 한쪽에만 너무 치우치면 재미가 없으니 본능적으로 착장의 에너지와 반대행위를 하면서 어중간한 상태, 경계에서의 오락가락에 대한 긴장의 ‘유지’인데, 여기서 언케니에 가까운 것이 유발된다. 그 언케니의 대상은 내가 될수도, 타인이 될 수도 있으며, 예시를 들었던 것처럼 착장+행동이 될 수도, 착장+착장이나 행동+행동의 조합도 가능하다. 나도 스스로가 언케니해서 뚝딱이게 되는 때가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스스로가 어색할 때 주변 반응이 좋다.

이는 평소에 내가 ‘자연스러움’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러움을 견디지 못해 어떤 연출을 가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로 인해 과장되어 보이거나, 계산하지 못한 지점에서 생기는 러프함이 따라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그 상태를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인다. 나는 ‘어떤 옷을 입은 나’로 연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씩은 ‘내가 어떤 옷을 입었다’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 위에서 언급한 코스프레와 패션의 구조에 대입해보면, 나는 코스프레를 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뒷걸음 패션을 하고 있던 셈이다.

아마도 패션이 되기 위해서는, 옷 자체보다 그 옷을 대하는 나의 주관이 먼저 개입되어야 하는 것 같다. 누가 어떻게 입었다는 것 보다, 내가 이 옷을 왜 입고 싶은지에서부터 출발하는 상태 말이다. 어떤 옷을 예쁘다고 느끼고 구매를 고려할 때, 나는 자동으로 반응하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게 왜 눈에 걸렸을까, 지금 내게 어울리는가, 내가 이걸 입으면 어떤 태도가 될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 어울리는가 하는 것들이 떠오른다. 이 개입이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실제로 어색하기도 하고, 다시 집에 들어가 갈아입고 나오고 싶다는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건, 이런 개입을 스스로 지속하면서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어떤 옷이든 구매 페이지의 문의란(Q&A)을 살펴보다 보면 키랑 몸무게만 던져놓고 ‘이 옷이 어울릴까요’ 하는 질문글이 꽤 많다. 사람들의 체형이 천차만별인데, 그 두가지 수치를 기준으로 어떻게 옷이 어울릴지 안 어울릴지 판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건 네가 왜 그 옷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리고 왜 어울릴 것 같다고 느꼈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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