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CHI : Button on the lace tights

GOCHI : Button on the lace tights

30 데니아의 얇게 비치는 레이스 패턴을 바탕으로,
그 위에 불규칙한 단추가 올려진 디자인

 

스타킹과 나일론 폭동

28,500

2 in stock


Description

 

스타킹은 원래 4세기 성직자들의 전례복이었다. 산타의 기원이 된 성 니콜라우스도 무릎까지 오는 흰 스타킹을 신었고,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넣는 양말도 원래는 스타킹이었다. 남성만 사용을 하던 스타킹은 14세기 처음으로 여성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유럽에서 여성들이 맨 발을 드러내는 것이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제작되던 스타킹은 장인들이 손으로 실크를 짜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가격이 한화로 120만원에 달했기 때문에 왕족은 스타킹을, 일반 여성들은 투박한 양말을 신었다. 이후 16세기 스타킹을 짜는 기계가 발명되면서 상류층 여성들까지 스타킹을 신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나일론이 개발되고, 스타킹은 대량 생산되며 엄청난 인기를 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나일론은 군수품 제조에 많이 사용되었고 스타킹을 비롯한 몇몇 제품들이 생산이 중단되었다. 몇몇 여성들은 다리에 물감칠을 하며 스타킹을 입은 착각을 연출 했을 정도로 당시 스타킹은 인기였다. 종전 이후, 스타킹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 다다른다.

 

가장 큰 사례 중 하나로 피츠버그의 한 백화점의 사례가 있다. 그 백화점에서 스타킹을 판매한다고 하자 4만명의 인파가 몰렸지만 물량은 턱없이 부족했고 구매를 하지 못한 소비자들이 난투극을 벌이며 ‘Nylon riots’이라고 기록되는, 나일론 폭동이 일어난다. 이후 뉴욕에는 3만명이, 샌프란시스코는 약 1만명의 쇼핑객이 매장 창문을 부수며 소동이 생기고, 비슷한 현상이 전국 스타킹 매장에서 보고되었다. 암시장에서 스타킹은 약 60만원으로 치솟고 강도는 스타킹을 훔치기 시작한다.

 

 

나일론 폭동은 당시 미국의 사회적 맥락이 담겨있다. 당시 은행, 사무실, 백화점, 전화 교환원 혹은 전문직 여성들은 복장 규정이 엄격해 스타킹을 반드시 착용해야 했다. 직장 뿐 만 아니라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의 공적, 사교적 자리에서는 외모가 곧 ‘가정의 체면’으로 작용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스타킹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품위와 교양의 상징이었다. ‘깔끔하고 단정한 여성’이라는 체면적 이미지와 직업적 요구 때문에 스타킹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상류, 중산층의 미적 규범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 모든 여성들이 스타킹을 필요로 하게 되며 발생한 현상이다.

 

이후, 1960년대에 이르러 마르고 중성적인 외모, 주근깨와 과장된 속눈썹, 짧은 머리 스타일의 트위기라는 영국 모델이 화제가 된다. 트위기는 17세에 모델로 데뷔해 2년의 짧은 활동을 했지만, 그의 스타일은 긴머리와 풍만한 몸매의 모델이 주를 이룬 기존의 미와 다른 새로운 미의 기준으로 제시되어 전 세계로 퍼져 ‘트위기 룩’으로 정착한다. ‘트위기 룩’은 1960년대 나타난 패션의 다양성의 기폭제로 작용했고, 곧 모즈룩의 핵심이 되며, ‘트위기 현상’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영국과 일부 나라에서 트위기는 폭발적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그의 모든 것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트위기는 노동 계층의 방언이라는 편견이 있던 코크니 억양을 사용했는데, 사람들이 그 억양을 대중적으로 사용하면서 영국 사회의 전통적 계급 구조가 붕괴된다. 더불어, 트위기는 미니스커트를 자주 착용하며, 패턴이나 컬러 스타킹을 활용했다. 그리고 트위기를 따라 여성들이 스타킹을 적극적으로 ‘패션 아이템’으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트위기 현상은 그동안의 여성에게 ‘요구되던’ 의복으로서의 스타킹을 패션 아이템으로서 새로운 위상을 세운 ‘현대 스타킹의 시초적 기점’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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